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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기상캐스터들의 수다] 10년 전 수능시험을 떠올리며…

등록 2013.11.06 11:00 / 수정 2013.11.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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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이 어느 덧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다행히 입시 한파는 없을 전망이다. 남부지방은 비로 인한 불편함도 없겠지만 중부지방은 아침에 비가 조금 오겠고 천둥, 번개도 예상되기 때문에 시간 여유를 가지고 수험장에 가는 것이 좋겠다. 올 해로서 수능일 날씨 예보는 네 번째인데, 해마다 날씨는 다르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늘 똑같다. 이젠 벌써 딱 10년 전 일이 되어버린. 고3이 아닌 ‘고2’때의, 2003년 수능일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의 사춘기가 아마 그 때이지 않았나 싶다. 성적별로 선긋기처럼 그어진 학급. 2학년 '1반' 학생이라는 것은 문과 30등 안에 들었다는 의미이므로 처음에는 분명 자부심도 있었던 것 같은데...어느새 '사춘기'와 함께 '반항심'이라는 것이 뒤늦게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반에서 1,2등만 하던 내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들. 물론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이 다 느꼈던 감정이었겠지만, 나는 유독 '경쟁'이라는 것에 약했다. 오기로 공부하면 되었을 것을. 안되면 포기라는 심정이었고,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 이리저리 방황했던 것 같다. 나는 전교 학생회에서 ‘학예차장’이라는 그럴듯한 명함을 달고, 시험공부보다도 더 열심히 학교 일을 준비했었다. 그 해 1학기 기말고사 석차가 100등이나 밀렸던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심한 반항심은 계속됐다.(물론 그 다음해 이 댓가는 톡톡히 치뤘지만...)

체육대회 응원단장이 되어 밤새 준비하고, 학교 축제 총 기획을 맡아 2학기 내내 축제 일만 했다. 기획을 맡으면서 댄스동아리 공연까지 연습하고, 학교 교지에는 글도 매번 써냈다. 반항심이라기엔 다소 발전적인 일들로 보이겠지만, 사실 '대입'을 문 앞에 둔 예비 수험생으로서 공부를 뒷전에 두고 다른 일에 몰입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 때 내가 기획했던 마지막 행사가 '고3선배들 수능 응원 이벤트'였다. 어떻게 하면 감동적으로 응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어떠한 수능선물과 현수막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예비소집일. 운동장에 후배들이 모두 나와 줄을 서서 '수능 대박'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3학년 선배들이 학급 창문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박수를 보냈다. 결과는 대성공. 모두 하나같이 '최고다, 정말 힘이 난다'며 기뻐했고,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선배도 있었다. 내가 기획한 행사로 그 많은 고3 선배들이 특별한 힘을 얻었다고 하니, 내 기분이야 말로 '대박'이었다.

후배로서 열심히 응원한 것도 잠시, 선배들의 수능이 끝나니 곧바로 내 이름 앞에 수험생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그리고 수능일 밤 아버지께서는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1년간 학교에서 하고 싶은 일들 다 해봤지? 재미를 느끼고 성취감을 가지는 것 같아 나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쭉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야해. 물론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지름길이 될 수는 있지. 남은 네 인생을 위해서 남은 고등학교 생활 1년은 공부에 미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이 역시 너의 선택이다만. 시간이 지났을 때, 절대 후회되지 않는 고3시절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석차가 100등 밀린 성적표를 받으시고도 ‘다음에 잘 해!’라며 미소를 지으셨던 아버지가 그 날은 차분하게 공부 이야기를 하셨다. 그동안 무관심하신 줄 알았는데, 묵묵히 나를 믿고 바라보고 계셨다. 또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변화하길 기다리고 계셨다.

그 날 이후, 나는 180도 바뀌어서 점심시간에도 밥 먹으며 공부하는 유난스런 ‘비호감’ 수험생이 됐다. 긴장 속에서 직접 수능을 치룬 나의 수능일 보다, 한 해 전 선배들의 그 날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 바로 이 때문이다. 조금 늦은 18세 사춘기의 씨앗은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이었다. 늘 다른 친구들 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고2시절 1년간 나를 힘들게 했었다. 그리고 공부 아닌 분야에서 막상 주목을 받으니 그것이 최고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날, 대입 시험은 누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덕분에 후회 없는 고3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수험생 시청자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기상캐스터가 꿈이라는 여학생은 시험을 앞두고 내게 조언을 부탁했다. 어떤 답장을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다. 사실 고3시절 최선은 다했지만 시험 결과는 실패였기 때문이다. 왜 실패를 했을까...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능시험 당일에 마인드컨트롤을 하지 못했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는 나 자신만 바라보고 달렸지만, 막상 결전의 날에는 상대평가에 연연해 위축됐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에게 보낸 답장은 ‘옆을 보지 말고 자신만 바라보세요!^^’라는 메시지다.

시험을 친 후에도 마찬가지. 누가 몇 점을 받고 어떤 학과를 쓰고... 이런 것에 자신을 비교하는 것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주어진 점수. 이 두 가지를 놓고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당시 소신 있게 대학을 선택한 친구들이 대학 생활도 더 만족하고, 그 후 취업까지 잘 이어진 것 같다. 수능시험을 바로 앞두고 이 글을 볼 수험생이 몇 명일지는 모르겠다. 내게 메일을 준 그 한 명의 친구라도 좋다. 나의 작은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길... 10년 전 나의 선배들을 응원했던 그 마음으로. 2013년 오늘은 10살 어린 후배들을 응원해본다. 한파 없는 수능, 그 따뜻한 기운만큼. "수능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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