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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기상캐스터들의 수다] 이진희 캐스터의 '따뜻한 말 한마디'

등록 2014.01.13 07:13 / 수정 2014.01.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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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캐스터라고 소개를 하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원고는 누가 써 주세요?"라는 말이다. 기상정보의 방송 원고는 기상청에서 받은 예보로 기상캐스터가 직접 작성한다. 그렇다 보니 캐스터가 예보를 자칫 잘못 볼 때는 틀린 내용이 나갈 수도 있다. 예보를 꼼꼼히 보고 중요도를 판단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신없을 때는 예보를 착각해서 마지막에 수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뉴스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단어 하나, 표현 하나도 무척 중요하다. 때문에 1분 남짓 되는 방송 시간보다 준비 시간이 훨씬 길다. 그래픽,통보문,보도자료 확인 등 준비할 것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내가 원고를 쓸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 자체가 거창한 표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상정보 에서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고, 덕분에 시청자들과 차곡차곡 추억을 쌓기도 했다. 

기상캐스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짧은 시간인 만큼 군더더기 없이 팩트만 강조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사실 기본도 못하고 기교만 부리는 것은 순서가 아니므로, 예보에 충실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에는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멘트 하나 정도는 넣고 싶었다.

3년 전, 구제역과 한파가 동시에 들이닥친 적이 있다. 지역 농가의 피해도 더 컸는데, 한파 때문에 구제역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나, 강추위가 누그러진다는 예보를 받은 나는 이 소식을 반가워하며 원고를 작성했다.

"한파와 구제역 때문에 농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실텐데요, 이제 한파도 끝입니다. 구제역도 빨리 물러가길 기대해봅니다"라는 인사를 마지막에 넣었다.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처음으로 시청자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저 나는 기상캐스터로서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피해 마을 어르신들은 방송을 함께 보시며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실감했다.

그 후, 때에 맞게 인사 한 마디씩을 꼭 넣었다. 정월대보름에는 "올해는 전국에서 환한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달 보시며 비는 소원들, 모두 이뤄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또 맑고 포근한 올 새해에는 "무난한 날씨만큼 편안하게 새해 시작하시기 바랍니다"의 끝인사를 넣는 등 시청자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멘트를 꼭 하고 싶었다. 표현은 다소 진부할 수 있지만 가끔씩 기상정보에서 날씨와 연결해서 전했더니, 조금은 더 의미있게 다가갔던 것 같다. SNS로 많은 분들이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주시는 걸 보니 말이다. (사실 이런 메시지에 감동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한 때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1분이라는 시간에서는 문장 하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정보를 하나라도 더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하는….

그 때, 때마침 만나게 된 한 선배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날씨 정보는 인터넷과 앱을 통해 더 빠르고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전달자들의 감성이 더 중요해졌다. 딱딱한 정보들이 담을 수 없는 그 ‘감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이 조언을 듣자 고민이 해결되고 방향이 또렷해졌다. 그 때부터 쭉 기상정보에 "오늘 하루 정말 추우셨죠?", "오늘 빙판길 때문에 출근길 움직임도 꽁꽁 얼었습니다"처럼 공감할 수 있는 말들을 하나씩 넣으려 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시청자의 눈이라고 생각하고 눈빛과 손짓에도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늘 이 점을 중심에 두고 방송을 준비한다.
방송에서 뿐일까. 평소에도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만으로도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날이 선 문장 하나로 관계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이 꼭 맞다는 것을 갈수록 더 실감한다.

밝게 건낸 아침인사가 누군가의 하루에 활력을 줄 수 있었고 가끔 물은 안부로 신뢰가 쌓이기도 했다. 물론 섣불리 꺼낸 퉁명스런 말로 상대방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적도 있다.  또 사회생활에서 실수나 오해가 있다 보면 쓰디쓴 말을 듣게 된다. 직설적인 비난을 각오할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를 담아 얘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고마워서 더 미안해지곤 한다. 사실 감정적, 즉흥적으로 말할 때가 많은 나로선 꼭 배워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이기도 한데, 제목만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이 호감을 가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누구나 따뜻한 말에는 호감을, 힘을 얻기 마련이다. 특히 마음까지 얼어붙기 쉬운 추운 한겨울. (올해는 2월까지도 추운 날이 많다고 한다.) 진심 담긴 포근한 말 한마디로 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내 삶 구석구석에도 온기를 불어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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